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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의 장례식-내가 죽는 날에도 저렇게 모일까

Jeff Lee 2007. 1. 10. 19:30

1. 산자의  장례식


내가 죽는 날에도 저렇게 모일까


우리 서로 삶을 함께 한 긴 세월 동안
우리 삶의 나이만큼 늘어난 식구들이
이 세상에는 슬픔이란 없다던 그의 회갑 날에도
저 얼굴들이 저렇게 모여 있었다

낮설지 않은 황토 땅
밋밋한 산자락에 누워버린 장지
구슬픈 요령 소리도 긴 신음소리도
모두 저버린 땅 끝에 서서
나는 나보다 먼저 간 동서의 가는 길을 지켜보고 있었다

죽은 이 한 세상 산 이 한 세상이라더니
소리꾼도 조문객도 상주까지도 검은 산허리를 감고
솟구치는 모닥불처럼 왕성한 식욕은 소주잔을 핥고
입가에 미소까지 번지는 새까만 머리들
하얀 사락눈이 쌍히고 뺨에서 목덜리로 스며들며
뜨거운 체온으로 소멸되고 있었다

나는 새 봉우리 위에 쌓여 가는 흰 봉우리를 바라보며
내가 죽는 날에도 저렇게 눈이 올까
그리고 저 그리운 얼굴들이 저렇게 모일까
마지막 하직이 끝나면
꼭 오늘처럼 술잔을 나누고 저렇게 돌아가겠지
아내나 자식들은 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모든 산자락을 넘어서 돌아가겠지
길게길게 열을 지어 기러기처럼 돌아가겠지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던 그 날처럼
꼭 그 날 처럼 다시 살아가겠지


1990년? 나이 70에 광주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던 최병우 시인의 '내가 죽는 날에도 저렇게 모일까'이다. 환갑을 넘긴 노시인이 친구의 장례식에서 돌아오며 느낀 감회를 읊은 시인 듯하다.


언제인가 미국에서 '산자의 장례식'을 거행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장례식과 추도식은 다른 개념이지만
암 말기 환자가 가족 친지를 초청하여 생전 추도식-Living Memorial-을 거행한 것이다.
참석자들은 그의 애창곡을 연주하거나, 시를 낭송하며 곧 고인이 될 환자에게 아름다운 송별식을 했다고 한다. 곧 고인이 될 환자는 '죽음을 대하는 용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2. 나의 소중한 친구 이○○...!

나와 가까운 친구 중 이○○ 선수는
대학시절,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해야 했다.
장난끼가 발동한 이선수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부음을 알렸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이선수의 죽음 소식을 접한 친구들은 부랴부랴 병원 장례식장으로 달려갔고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의 장난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당시 부산의 특수대학에 유학 중인지라 참석하지 못했다)

이선수는 자신의 부음을 듣고 달려온 친구들에게
"야! 오랫만이다. 술먹이나 한잔하러 가자!'"는 황당한 한마디를 던지고서
목발을 짚고 병원을 나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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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유서쓰기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유서....내 삶을 정리하는 마지막 흔적.
나의 장례식....나를 매개로 한 산자들의 만남은 아닐지...??


2006년 11월 15일.
46세의 나이에 암으로 숨을 거둔 구논회 국회의원의 추도식장에서
왈칵 눈물이 나면서 우리의 죽음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